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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헝가리인들은 혼혈이 되고 싶지 않다. 유럽과 비유럽 인종이 섞인 나라는 더는 국가가 아니다”
빅토르 오르반(59) 헝가리 총리가 23일(현지시간) 루마니아 바일레 투스나드의 연례연설 중 일부다. 이 한마디에 헝가리가 발칵 뒤집혔다. 가디언은 24일 그의 발언을 전하면서 “오르반은 수년간 비슷한 주장을 해왔지만, 이번 발언은 유독 노골적인 극우적 표현”이라고 지적했다.
“유럽은 혼혈? 좌파 이데올로기 속임수”
오르반 총리는 이날 연설에서 “유럽은 (순수 혈통이 아니라) 이미 혼혈 인종이라는 주장은 국제주의 좌파의 이데올로기적 속임수”라면서 미래에 전쟁을 야기할 주요 원인으로 인구 구성과 이민, 젠더 문제를 꼽았다. 이민자들이 백인 중심의 유럽 인구ㆍ문화를 대체한다는 이른바 ‘대체이론(Replacement Theory)’에 대해 수차례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하기도 했다. ‘대체이론’은 프랑스 작가 르노 카뮈가 쓴 책에서 파생된 말로, ‘유럽의 아랍화’를 뜻하는 ‘유라비아’나 ‘백인 학살(White Genocide)’이라는 음모론으로 발전했다.
즉각 반발이 터져 나왔다. 헝가리 야당 ‘모멘텀’의 유럽의회(MEP) 의원 카탈린 체는 트위터에서 “오르반 정권의 본색이 드러났다”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혼혈 헝가리인들은) 피부색이 다를 수도 있고, 유럽이나 그 너머에서 왔을 수도 있지만, 그들은 우리의 일부이며 우리는 그들이 자랑스럽다”며 “다양성은 국가를 약화하는 게 아니라 강화한다”고 강조했다. 루마니아의 유럽의회 의원인 알린 미투샤 역시 “인종이나 민족의 ‘순수성’을 논하는 것은 망상이자 위험한 일”이라고 비판했다.
오르반 총리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선 서방을 비판했다. 그는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ㆍNATO)가 우크라이나에 현대 무기를 지원할수록 러시아는 전선을 더욱 확대할 것”이라며 “우리(유럽)가 하는 일은 전쟁을 장기화시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서방의 임무는 이번 전쟁에서 우크라이나의 승리를 기원하는 것이 아니라 평화협정을 중재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우리는 러시아 편이나 우크라이나 편이 아니라 둘 사이에 있어야 한다”면서다. “대러 제재는 효과가 없었다”라고도 했다. 이에 대해 우크라이나 외무부의 올렉니콜렌코 대변인은 “오르반의 주장은 러시아 선전”이라고 반박했다.
“서방 임무는 우크라 평화협정 중재”
헝가리는 나토 일원이지만, 오르반 총리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롤모델로 삼는 ‘리틀 푸틴’으로 통한다. 그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기 직전 모스크바에서 푸틴과 5시간 동안 회담을 갖기도 했다. 이날 연설에 앞서 시야르토 페테르 헝가리 외무장관은 21일 모스크바를 찾아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과 만나 천연가스 공급 확대를 요청했다.
오르반 총리는 지난 4월 총선에서 승리해 4연임에 성공했다. 1998년 35살에 유럽 최연소 총리 기록을 보유한 그는 2002년 사회민주당에 정권을 내줬다가 2010년 재집권한 뒤 이번 총선까지 승리하면서 유럽연합(EU) 국가 중 최장기 집권 중이다. 총선 기간 그가 이끄는 집권당 피데스(Fidesz·청년민주동맹)의 지지율이 떨어지자 대러 제재에 동참하기도 했지만, 이후 극우 본색을 다시 드러냈다. 그는 다음 달 미국을 방문해 보수단체가 주최하는 보수정치행동회의(CPAC)에서 연설할 예정이다. CPAC는 올 초 부다페스트에서 콘퍼런스특별 세션을 개최했었다.
이를 두고 오르반 총리가 국제사회의 극우 결집에 나서는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헝가리 정치캐피탈 싱크탱크 연구원 피터 크레코는 가디언에 “오르반은 분명히 러시아의 승리를 바란다”면서 “그는 이민 문제가 단합된 서구 사회를 분열시키고 모든 정부는 극우화될 것이라고 믿는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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